제철 제대로 즐기기 – 가을 편 (임정아 기자)
"역대 가장 뜨거운 7월 첫 주"…서울 '37.7도', 117년 만에 '최고'
"올해 여름? 11월 중순까지 더울 것"
“40도 폭염→500㎜ 폭우→또 폭염…여름철 극한기후 '뉴노멀' 되나”
이제는 '장마'가 아니다, ‘한국형 우기’의 시대
뉴스기사에서는 연일 폭염 기록 갱신,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상기후현상을 보도하고 있다.
7월 중순, 파란 하늘은 맑고 깨끗하다. 하얀 구름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마른 장마가 지나가고 난데없이 국지성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났다. 충남, 경남, 전남 등 지역 곳곳에 물난리로 인해 인명피해, 농작물 피해, 침수 등 비 피해가 엄청났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지독하게 맑다.
7월의 나무는 온통 초록이다. 기후변화에도 자연의 생명은 때에 맞춰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빨간 보리수 열매가 익고 나면, 까만 오디 열매가 익어가고, 다음으로는 논길 따라 빨간 산딸기 열매가 차례로 익어간다. 분홍 솜사탕 같은 꽃이 피는 자귀나무 아래를 지나가면 고급 향수 향이 난다. 학교 담 너머로 주황색 능소화가 늘어져 피어난다. 저류지에서는 개개비가 ‘객객객객객~’ 울어대고, 비가 올라치면 연못에서 맹꽁이가 울어댄다. 자연의 친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해내고 있다.
그럼 이제 우리도 제철에 맞게 우리 할 일을 해보자.
먼저 가을 절기를 알아보고, 때를 알고 제대로 즐겨보자!
김신지 작가의 <제철행복> 책을 참고로 절기도 알아보고, 나만의 절기 즐기기 목록도 만들어보면 좋겠다. ‘어디에 있어야 자주 웃게 되나?’ 김신지 작가의 말처럼 제철에 내가 많이 웃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보는 것도 좋겠다.
입추(8월 7일 무렵)
가을 길목에 들어서는 입추다. 파랗고 높은 하늘을 볼 때면 발길을 멈추고 핸드폰에 예쁜 하늘을 담고 싶어진다. 숲길을 걸을 때 렌즈를 하늘로 향하게 해서 하늘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보기도 한다. 예전에 카톡 상 미션으로 하늘 인증샷 올리기를 한 적이 있는데 예쁜 하늘과 구름, 노을을 보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입추 무렵, 낮은 뜨겁고 여름 햇볕이 달궈 놓은 열기가 남아있지만, 밤이면 바람이 달라진다. 정약용선생의 아들 정학유의<농가월령가>에서 보면 입추 이야기가 나온다.
“늦더위가 있다 한들 계절의 차례를 속일 수 없어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바람 끝도 다르다.”
처서(8월 22일 무렵)
더위가 멈추며 가을이 깊어지는 시기로 풀벌레 소리가 많이 들린다.
장마 있는 여름을 지나는 동안 눅눅해진 책이나 옷을 모두 꺼내어 햇볕에 쬐고 바람에 말리고 더위에 힘들고 지친 마음도 뽀송뽀송 말리면 좋겠다.
백로(9월7일 무렵)
밤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히는 시기로, 제비는 남쪽으로 떠나고 북쪽에 사는 기러기가 찾아오는 계절이다.
들판에 곡식과 과일이 무르익어가는 계절로, 과일들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깔로 익어간다.
秋 (가을 추)자는 禾(벼 화)가 火(불 화)에 그을리는 모습의 한자다. 백로 시기에 논에 있으면 신기하게도 고소한 밥냄새가 난다. 뜨거운 가을 볕에 벼가 익어간다.
추분(9월 22일 무렵)
낮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에는 계수나무 향기가 제철이다. 하트 모양의 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달달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달콤한 향을 책갈피로 담아 보기도 한다.
풀숲에서는 다양한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진다.
한로 (10월 8일 무렵)
찬 이슬이 맺히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열매가 익어가고, 국화꽃이 피고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이 절기에 내소사 단풍구경을 간 적이 있다. 아침 찬 공기를 인심 좋은 숙소주인이 내어준 따뜻한 국화차 한 잔으로 녹였던 기억이 난다.
잘 익은 열매도 그냥 혼자서 저절로 익어간 게 아니다. 그 속에 수많은 자연의 일들이 담겨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시를 감상해보자.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상강(10월23일 무렵)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짙어지는 때로 이제 진짜 겨울을 준비해야하는 때이다.
<제철행복> 책에서 작가가 알려준 절기에 챙길 일들을 참고해서
절기마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남겨본다.
입추
- 파란하늘 뭉게구름 찍어, 상상 그림 그려보기
처서
- 풀벌레 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기
- 소리를 말로 옮겨보기
백로
- 땅에 떨어진 열매들을 모아 다람쥐, 청설모 밥상 차려주기& 사진으로 남기기
추분
- 향기 나는 계수나뭇잎에 시 쓰기
한로
- 좋은 사람들과 등산하기
- 국화차 마시기 & 국화 베개 만들어보기
상강
- 자연에서 가을 색깔을 모아 사진으로 남기기
이은경 : 김소월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참나리꽃은 산유화라고도 해요.
사람이 사는 곳 근처에 피었고, 예전에는 참나리꽃 봉오리가 부풀어야 모내기를 했대요. 줄기가 키를 넘고 꽃이 질 때면 두벌매기도 끝나고 농사일도 가닥이 잡혔대요. (책 '게으른 식물은 없다' 146쪽 참고)
절기와 식물과 농업이 만나는 시점이 흥미로워요. 절기가 잘 맞지 않고 있는 기후위기 시대에 절기를 알아보고 기억하고 지켜가는 노력이 귀하네요. 지고있는 여름 꽃 이야기 나누어 보았어요.
임정아 : 청개구리집 앞에 참나리꽃 붉게 필 무렵 모내기를 했네요. 먹고사는 일이 중요한 만큼 절기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었을 겁니다. 농업의 소중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요즘 시대에 절기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거겠죠
이은경 : 참나리꽃 필때 직접 모내기를 해보신 건가요? 모를 내는 행위가 절기 안에서 이루어지고, 절기는 주변 식물들의 변화로 알게되는 신기한 자연현상이에요. 농업 뿐만이 아니라 절기는 사람에게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흐름이라서 더 관심받았으면 좋겠어요.
임정아 : 여름철새인 꾀꼬리가 올 때면 모내기를 해야할 때라고 하지요. 식물도 곤충동물들도 자연의 시계, 순리대로 살아가지요. 철따라서 일어나는 그 변화를 보면 참 신기해요.
이은경 : 도연명의 시
"동쪽 담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쓸쓸히 남산을 바라보네."
가을 꽃인 국화는 동쪽 울타리 밑에 심어야 하는 거였네요. 동쪽은 저녁볕이 늦게까지 들어서 그렇대요.
이런, 예전 글과 시에서 내가 그동안 키운 국화들은 왜 한해가 지나면 없어지는지 알 수 있었어요.
절기와 계절과 자연의 흐름을 보며 아하 무릎을 치게 됩니다.
임정아 : 옛 사람들은 몸으로 자연의 흐름을 느끼고 절기를 만들었겠지요. 은경님은 자연과 가까이 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자연스럽게 체득하시는군요.^^
김경희 : '열매 속에 수많은 자연의 일들이 담겨있다'라는 글이 가슴에 와닿네요. 서호천에도 자귀나무가 있어요. 꽃이 필 때면 그 향기가 너무 좋아서 한참 동안 그 곳에 머물다 오곤 합니다